정보가 공짜여도 선별은 공짜가 아니다

인터넷 덕분에 정보는 예전보다 훨씬 싸고 빠르게 접근할 수 있게 됐다. 검색만 하면 글, 강의, 논문, 영상이 끝없이 나온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이 여전히 책을 사고, 큐레이션 서비스를 구독하고, 누군가가 잘 정리해 둔 목록에 돈을 쓴다.
이 현상은 모순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자연스럽다. 정보가 많아질수록 진짜 비용은 정보 자체보다 무엇을 읽고 무엇을 버릴지 판단하는 일에서 커지기 때문이다.
정보가 많아질수록 희소해지는 것은 주의력이다
허버트 사이먼(Herbert Simon)은 1971년 글에서 정보가 풍부한 세계에서는 정보가 수용자의 주의를 소비하며, 그 결과 주의력의 빈곤이 생긴다고 설명했다. 이 관찰은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
문제는 단순히 자료가 많다는 데 있지 않다.
- 검색 결과가 너무 많고
- 서로 다른 형식으로 흩어져 있고
- 최신성과 신뢰도를 직접 가려야 하며
- 읽기 전에 이미 선별 피로가 발생한다
즉 공짜 정보가 많아졌다고 해서 학습 비용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오히려 주의를 어디에 쓸지 결정하는 비용이 더 커졌다고 보는 편이 정확하다.
경제학에서도 정보는 찾는 데 비용이 든다고 본다
조지 스티글러(George Stigler)의 The Economics of Information은 소비자가 가격과 품질 정보를 찾는 데도 비용이 든다고 본다. 정보는 그냥 공중에 떠 있는 것이 아니라, 탐색과 비교를 거쳐야 비로소 쓸모를 얻는다는 뜻이다.
책이나 큐레이션 서비스의 가치는 바로 이 지점에서 설명할 수 있다.
- 책은 자료를 모아 순서를 정해 주고
- 좋은 목록은 탐색 비용을 줄여 주며
- 신뢰할 만한 추천은 비교 비용을 줄여 준다
그래서 누군가가 돈을 내고 사는 것은 정보 그 자체보다, 잘못된 정보와 덜 중요한 정보를 건너뛰게 해 주는 구조인 경우가 많다.
책을 산다는 것은 정보보다 편집과 순서를 사는 일에 가깝다
이 관점에서 보면 책의 가치는 단순히 지식을 담고 있다는 데 있지 않다. 이미 인터넷에 있는 내용을 반복하는 책도 많다. 하지만 좋은 책은 적어도 세 가지를 제공한다.
- 무엇이 먼저 와야 하는지 정한 순서
- 저자가 중요하다고 판단한 강조점
- 덜 중요한 자료를 버린 편집의 흔적
즉 책은 종종 정보의 저장소보다 선별과 배열의 결과물로 읽는 편이 더 정확하다. 인터넷에서는 이 편집을 독자가 직접 해야 하지만, 책에서는 어느 정도 그 노동을 저자와 편집자가 대신한다.
그래서 지식 소비에서 중요한 것은 “얼마나 많이 읽는가”보다 “무엇을 덜 읽을 수 있게 되었는가”다
정보 과잉 시대의 생산성은 더 많이 저장하는 능력보다 더 많이 버리는 능력과 가깝다. 허버트 사이먼도 정보 시스템이 조직의 주의를 보존하려면 더 많이 말하는 시스템이 아니라, 더 많이 걸러 주는 시스템이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 원칙은 개인의 독서와 학습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 좋은 큐레이션은 읽을 목록을 늘리기보다 줄이고
- 좋은 책은 모든 논점을 다 싣기보다 핵심만 남기고
- 좋은 메모는 더 많은 내용을 담기보다 다음 행동에 필요한 것만 남긴다
결국 지식의 가치는 축적량보다 주의력을 얼마나 아껴 주는가와 연결된다.
핵심 정리
인터넷 시대에 정보가 공짜에 가까워졌다는 말은 어느 정도 맞다. 하지만 선별과 비교, 신뢰 판단, 읽는 순서를 정하는 일까지 공짜가 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정보가 많아질수록 이 부분의 비용은 더 커진다.
그래서 오늘날 책, 추천 목록, 큐레이션 서비스의 가치는 정보 독점보다 선별 비용 절감에 더 가깝다. 정보가 공짜여도 선별은 공짜가 아니다. 우리가 실제로 돈과 시간을 쓰는 이유도 대개 여기에 있다.